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밍밍이가 거울 앞에서 멈춰 서 있으면 "아, 자기 얼굴 보는구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강아지는 눈이 아닌 코로 자신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게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강아지의 자아인지(self-recognition) 방식은 사람과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어릴 때 밍밍이가 거울을 보고 짖었던 이유
밍밍이는 잉글리시 불독입니다. 아기 때 거울 앞에 데려갔더니 갑자기 컹컹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웃긴 장면이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행동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울 속 강아지에게서 자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니, 밍밍이 입장에서는 낯선 침입자가 유리 안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짖는 게 당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강아지가 거울을 보다가 뒤를 돌아보거나 경계하면 "거울 속 자신을 모른다"고만 알려져 있는데, 저는 그게 단순히 지능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감각 체계 자체가 다른 문제였습니다. 강아지의 후각 능력은 사람보다 최소 1만 배 이상 예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예민한 코로 냄새를 감지할 수 없는 거울 속 형상은, 강아지에게는 그냥 의심스러운 낯선 존재일 뿐입니다.
지금의 밍밍이는 거울을 봐도 짖지 않습니다. 그냥 잠깐 쳐다보다가 무관심하게 지나칩니다. 제가 처음엔 "이제 자기인 줄 아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냥 익숙해진 자극에 반응을 끊은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짖을 필요도 없고, 뒤쫓을 필요도 없는 냄새 없는 존재로 분류해버린 거죠.
자아인지 실험, 강아지는 왜 통과하지 못할까
자아인지(self-recognition)란 자신의 존재를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마크 테스트(Mark Test), 흔히 거울 실험이라 불리는 방법입니다. 실험 방법은 간단합니다. 동물의 신체 일부에 빨간 점 같은 표식을 붙이고 거울 앞에 세웁니다. 거울을 보고 그 표식을 지우려는 행동을 보이면 "저게 나다"라는 자아인식이 있다는 증거로 봅니다.
이 실험을 통과한 동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통과한 것으로 알려진 동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침팬지, 오랑우탄 등 대형 유인원 일부
- 돌고래(병코돌고래 기준)
- 코끼리(아시아코끼리 일부 개체)
- 까치(조류 중 유일하게 통과한 것으로 보고됨)
강아지는 이 목록에 없습니다. 거울 실험에서 강아지는 자신을 알아보는 행동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실험 자체가 시각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시각으로 자신을 인식하니까 거울 실험이 유효하지만, 강아지처럼 후각이 주된 감각인 동물에게 거울 실험으로 자아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은 기준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이번에 공부하면서 꽤 인상 깊게 받아들인 대목이었습니다.
실제로 컬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알렉산드라 호로비츠(Alexandra Horowitz) 교수는 거울 대신 냄새를 활용한 자아인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강아지에게 자신의 소변 냄새와 다른 냄새를 구별하게 하는 방식이었는데, 강아지들은 자신의 소변에 더 적은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자기 냄새를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결과였습니다. 쉽게 말해 강아지는 거울 대신 코로 "이건 내 거"를 구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Frontiers in Psychology (출처: frontiersin.org)에 게재되었습니다.
냄새로 자신을 인식하는 후각적 자아인지
후각적 자아인지(olfactory self-recognition)란 시각이 아닌 냄새를 통해 자기 자신을 다른 개체와 구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강아지가 산책 중에 전봇대나 나무에 코를 들이밀고 오래 냄새를 맡는 장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소변을 봤던 자리에서 다시 소변을 보는 행동, 이것도 단순한 배변 습관이 아니라 냄새를 통한 영역 표시이자 자기 존재의 확인 행동입니다.
밍밍이도 산책을 나가면 꼭 특정 구간에서 멈춥니다. 전에 왔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처음엔 그냥 냄새가 좋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사실은 자기 영역과 자기 냄새를 확인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강아지들이 서로 만나면 먼저 코부터 갖다 대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시각 정보보다 후각 정보가 훨씬 신뢰할 수 있는 감각 데이터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강아지가 거울에 반응하지 않으면 그냥 멍청하거나 무관심한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해석이 너무 사람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아지에게 거울은 시각적으로만 존재하는 정보이고, 냄새라는 핵심 감각 채널이 빠진 불완전한 자극입니다. 반응이 없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처리 방식일 수 있습니다. 동물의 인지 방식을 인간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건 처음부터 한계가 있습니다. 이 점은 미국심리학회(APA) 자료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밍밍이와 거울, 그리고 제가 놓쳤던 것들
밍밍이는 애견카페에 가도 다른 강아지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한테 달라붙어서 쓰다듬어 달라고 앞발을 올립니다. 그러다 보니 거울 앞에 세워도 "어? 강아지네" 하고 한 번 보다가 그냥 넘어가는 편입니다. 다른 강아지에게도 관심이 없는데, 냄새도 없는 거울 속 강아지에게 반응할 이유가 더더욱 없는 거겠죠.
어느 날 밍밍이가 거울 앞에 혼자 멍하니 서 있길래 제가 반쯤 진지하게 "지금 자기 외모 체크하는 거야?" 하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만큼은 밍밍이가 거울 속 자신을 알아보는 게 아닐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공부해보니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밍밍이는 그냥 빛이나 움직임 같은 시각 자극에 잠깐 주목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강아지의 인지 체계에서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사회적 인지(social cognition)입니다. 사회적 인지란 자신과 타인의 관계, 그리고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강아지들은 이 영역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입니다. 사람의 감정을 읽고, 시선을 따라가고, 목소리 톤으로 기분을 파악합니다. 거울 실험 하나로 강아지의 자아인지가 없다고 단정짓기엔, 강아지가 실제로 보여주는 능력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밍밍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이 아이를 제 기준으로 이해하려 들면 자꾸 틀린다는 겁니다. 거울을 보고 자기인 줄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틀렸고, 무관심하게 지나치면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것도 틀렸습니다. 강아지는 단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할 뿐입니다. 반려견을 키우고 계신 분이라면, 한 번쯤 거울 앞에 데려가 보시길 권합니다.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지금은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xVCE4l6M-M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psyg.2017.02308/full https://www.apa.org/monitor/2017/11/dogs-self-recogn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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