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잉글리쉬 불독을 혼내고 있는데 갑자기 큰 하품을 하길래 '이 녀석이 지금 나를 무시하나' 싶어서 더 화가 났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완전히 오해였더라고요. 강아지가 보내는 신호를 사람 방식으로만 해석하다 보니 아이의 진짜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겁니다. 저처럼 강아지 언어를 잘못 이해해서 당황하거나 서운했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하품은 졸려서가 아니라 진정 신호입니다
강아지를 혼낼 때 갑자기 하품을 하면 대부분 보호자들은 무시당한다고 느낍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동물 행동학에서는 이걸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이라고 부릅니다. 카밍 시그널이란 강아지가 긴장이나 불안을 느낄 때 상대방과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보내는 신호를 뜻합니다.
보호자의 화난 목소리와 표정을 감지한 강아지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때 본능적으로 '나는 싸울 생각 없어요, 진정하세요'라는 의미로 하품을 하는 겁니다. 동시에 자기 자신의 흥분도 가라앉히려는 자기 진정 행동이기도 하고요. 제가 직접 경험한 바로는, 혼낼 때 아이가 하품하면 그 순간 잠시 멈추고 제 톤을 낮췄더니 아이도 훨씬 빨리 안정을 찾더라고요.
그러니 앞으로 강아지가 하품을 하면 무시라고 오해하지 마시고, 오히려 '알았어, 나도 진정할게'라는 마음으로 한 발 물러서 주세요. 아이가 보내는 SOS 신호를 제대로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훈육 효과는 훨씬 좋아집니다.
핥기는 애정 표현만은 아닙니다
강아지가 얼굴을 핥으면 대부분 '우리 아이가 뽀뽀해주네' 하고 좋아합니다. 맞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애정 표현이 맞아요. 하지만 모든 핥기가 다 사랑 고백은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코나 입술을 핥는 건 불안 신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희 집 강아지가 간식을 먹은 직후에도 계속 코나 입술을 핥길래, 저는 맛있어서 입맛을 다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불안 신호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강아지는 긴장하거나 불안하면 침 분비가 줄어들어 코가 건조해집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코를 촉촉하게 유지하려고 핥는 건데, 이는 후각을 최대로 끌어올려 위험 상황에 대비하려는 생존 본능입니다.
얼굴 핥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강아지가 꼬리를 사타구니 사이로 말아 넣고, 귀를 뒤로 젖힌 채 미친 듯이 얼굴을 핥는다면 이건 복종적 핥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이 너무 무서워요, 제발 화내지 마세요'라고 싹싹 비는 행동인 거죠. 그러니 핥는다고 무조건 좋아하는 거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그때 아이의 몸 전체 상태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몸이 경직되어 있는지, 꼬리가 어디를 향하는지, 눈동자는 어떤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진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배를 보이는 건 항복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강아지가 배를 드러내면 보통 '기분 좋구나' 하고 쓰다듬어 줍니다. 저도 그랬어요. 저희 강아지는 잔디밭 산책을 가면 배를 내밀고 등을 막 비비곤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항상 배를 쓰다듬어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공격하지 마세요'라는 항복 신호였다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만져 달라는게 맞습니다. 몸에 힘을 빼고 입을 벌린 채 편안하게 누워 있으면 진짜 배를 쓰다듬어 달라는 거예요. 혀가 살짝 나와 있거나 꼬리를 느긋하게 흔들고 있으면 확실히 행복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가끔 상황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만약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꼬리가 사타구니 사이로 말려 들어간 채 배를 보인다면 이건 극도의 공포 상태입니다. 눈도 불안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요. 이때 배를 만지면 아이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미국수의행동학회(AVSAB)의 연구에 따르면(출처: AVSAB), 이런 항복 자세는 늑대 시절부터 이어져온 복종 신호로, '제발 공격하지 마세요'라는 최후의 방어 메시지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럴 땐 시선을 피하고 아이가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게 최고의 배려입니다.
꼬리 흔들기도 맥락을 봐야 합니다
많은 보호자분들이 꼬리만 흔들면 '아,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위험한 착각일 수 있어요. 꼬리를 높이 세우고 빳빳하게 짧고 빠르게 흔드는 건 반가움이 아니라 극도의 경계 상태입니다. 심하면 공격 직전의 신호일 수도 있고요.
반면 꼬리를 중간 높이에서 크게 휘두르면서 엉덩이까지 함께 흔들면 그건 진짜 기쁜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확실히 구분됩니다. 저희 아이는 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옆에서 숨죽여 있다가, 제가 웃으면 그때야 엉덩이까지 흔들며 다가오거든요. 이 차이를 알고 나니 아이의 감정 상태를 훨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결국 강아지의 언어는 단어 하나가 아니라 문장으로 읽어야 합니다. 꼬리만 보지 말고, 그때 귀가 어디를 향하는지, 눈동자는 어떤지, 몸 전체가 긴장했는지 이완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다음은 강아지 신호를 읽을 때 체크해야 할 주요 포인트입니다.
- 꼬리 위치와 흔드는 속도 - 높고 빠르면 경계, 중간 높이에서 크게 흔들면 기쁨
- 귀 방향 - 앞으로 쫑긋하면 집중, 뒤로 젖히면 불안이나 복종
- 눈동자 움직임 - 고정되어 있으면 안정, 이리저리 움직이면 불안
- 몸 전체 긴장도 - 힘이 빠져 있으면 편안함,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스트레스
이렇게 전체 맥락을 읽는 습관만 들이면 여러분도 훌륭한 강아지 통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몸을 부르르 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욕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터는 건 사람으로 치면 '휴'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과 같은 행동이에요. 저희 강아지는 산책을 가서 공을 꺼내주면 몸을 부르르 털곤 하는데, 이제 보니 긴장을 풀고 '재밌게 놀아보자!'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강아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하면 기분이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고, 건강까지 챙겨 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강아지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 마음을 읽어주고, 상태는 괜찮은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습니다. 우리에게 강아지는 삶의 일부지만, 강아지에게 우리는 삶의 전부니까요. 우리보다 훨씬 짧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매일 온몸으로 보내는 신호를, 이제라도 제대로 읽어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09Ypk77Yj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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